EP3. 차별과 역경이 최고로 만든 힘
세계 5대 현악기 장인 ‘마스터 메이커’
1976년 미국바이올린제작자협회가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 ‘국제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제작자 콩쿠르’는 ‘진창현’이란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린 무대였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음향과 세공으로 나뉘어 총 6개 종목의 경연이 벌어진 이 콩쿠르에서 그는 5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1984년 미국바이올린제작자협회는 이러한 진창현에게 무감사 제작자의 영예인 ‘마스터 메이커(Master Maker)’란 칭호를 부여했다. 그 과정에서 재미 유대인들의 응원이 있었다고 한다.
“유대인 고객들이 앞장서서 저를 추천했답니다. 일본에 사는 코리안(Korean), 즉 재일한국인이란 저의 정체성이 그들과 교감을 나누는 데 도움이 되더군요. 재일동포와 유대인은 망국의 고통을 안고 국경을 건넜고, 이주한 나라에서 차별받는 존재잖아요.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서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마이너리티라는 공통점이 저와 유대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족으로 성장한 비결로 ‘민족사의 계승’을 통한 ‘정신력의 함양’을 꼽았다. 유대인들은 유대교 계율을 기초로 한 민족윤리와 2000여 년을 견뎌온 고통스러운 유민(流民)의 역사를 후대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막강한 생존력을 발휘시키는 원동력이다.
“유대인들은 크게 성공해도 사치를 부리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헨리 키신저 같은 사람은 노벨 평화상을 받고 미국의 국무장관까지 지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고 대화하기를 즐깁니다. 격식이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는 유대인의 실용적 자세는 본받아야 합니다.”
그의 집 문패에는 ‘진창현’ 이란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름을 물려준 부모님이 자랑스럽고 재일한국인이란 정체성을 당당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 싶겠지만 재일동포들이 ‘나는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사회에서 차별받거나 편견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일본 영어교과서에 실린 장인
진창현은 일본인들도 존경하는 재일동포다. 그의 삶은 일본에서 책과 만화, TV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일본 고등학교 영어교과서(三友社 간행 ‘COSMOS Ⅱ’)에 ‘바이올린의 수수께끼(The Mystery of the Violin)’라는 제목으로 12쪽에 걸쳐 소개됐다.
진창현이 세계적 명성을 얻자 일본 사회는 그에게 끈질기게 국적 변경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않았다. 일본인으로의 귀화는 자기 정체성 포기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귀화한다고 제가 일본인이 될 수 있습니까? 저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 아버지를 부정한다고 그 사실을 지울 수는 없는 법입니다.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한민족 DNA의 힘을 믿고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게 일본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운명이자 생존법이라 믿습니다.”
2008년 10월 한국 정부는 진창현에게 일반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열네 살 때 혼자 몸으로 일본으로 떠난 지 65년 만에…. 스파이 누명을 씌워 고문의 고통을 안겨줬던 40년 전의 조국이 비로소 그를 따뜻이 환대한 것이다.
수상식 직후 진창현은 기자와 만난 그는 "꿈만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센가와에서 재회한 날, 그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훈장을 받자 도일 후 그를 한 번도 찾지 않던 김천중학 친구들이 동창회에 참석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전화까지 걸어왔다는 것이다. 해마다 성묘하러 고향에 들렀지만 번번이 외면하던 친구들이 비로소 그에 대한 경계를 푼 것이다. 정부가 수여한 훈장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굴레를 벗겨주었다.
역경이 준 기회
마음의 짐을 털어서였을까 진창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술 마시는 취미까지 생겼다. 얼마 전 병원에 들렀다가 만성저혈압 진단을 받고 처방으로 약한 술을 조금 마시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마시는 재미가 쏠쏠해요. 기분도 좋고 대화도 재미나고 혈액순환도 잘 되니, 건강도 좋아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마실 걸 그랬어요. 적당히 마시는 술이 약이 되듯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는 치료의 효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좋은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맥박이 강해지거든요. 바로 저의 목표가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깨끗한 피처럼 맑고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의 온몸을 전율시키는 바이올린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진창현은 술잔을 기울이는 순간조차도 술과 바이올린을 연관 짓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세 차례 인터뷰하면서 발견한 것은, 그는 타고난 천재성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대가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새벽 3시에 시작하는 일과를 수십년 동안 반복하면서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고 있고, 학구열도 학창시절 못지않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견되는 1등 명기를 만들 수 있는 한국인 진창현의 마무리 멘트는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저도 모르게 강한 힘이 생겨납니다. 역경이 기운을 줍니다.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지만, 그 덕분에 얻은 기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끝-
[서울=이민호]
* 지원 : 「재외동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