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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年03月09日 1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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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한글專用에서 轉向하였는가?(1) 한 記者의 體驗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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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
저는 이 자리에 나올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 때 한글專用論者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딸이 둘인데 다 순 한글이름으로 戶籍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한글專用 잡지에도 근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에 한글專用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왜 한글 專用에 들어갔다가 벗어나서 漢字混用主義者가 되었느냐 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곳에 계신 분들의 자녀분 들이라든지 손자, 손녀 또 후배 등 젊은사람들 주로 한글專用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때 유용한 論理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저의 體驗的인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大韓民國이 앞으로 先進國이 되려면 넘어야 될 難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北韓 金正日 집단과 거기에 附和雷同하고 있는 南韓의 親金正日勢力의 도전 그리고 한글專用입니다.
이두가지는 共通點이있습니다. 그것은 억지와 煽動의 論理, 속임수의 論理를 구사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韓國社會에서 이 너무나 明明白白한 거짓말의 論理, 煽動의 論理, 僞善의 論理가 어떻게 뿌리를 박고 오랫동안 힘을 쓸 수 있었느냐?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合理的으로 科學的으로 除去해 가면서 統一로 나가고 그 이후에 先進國으로 나가는 긴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北韓의 首領支配體制의 論理가오늘날 맞지 않고 世界史의 흐름에서 守舊反動의 論理인 것처럼, 한글專用의 論理도 言語生活이나 科學的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불리하고 歷史와 傳統의 흐름에 비추어서도 맞지 않습니다. 맞지않는 論理가 韓國社會에서는 구체적인 힘을 發揮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新聞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한글專用으로 가고있고 雜誌나 圖書出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의 99% 한글專用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억지논리 선동논리를 輕蔑하고 無視해버리면 없어질 줄알았는데 그것이 韓國社會에서 많은 사람들을 捕虜로 만들어가지고 실제로 우리의 文字를 低級化 低質化시키고, 우리의 精神文化까지 상당히 오염시켜 이것이 우리가 先進國으로 되는 데 상당한 장애요소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認定하고 直視하지 않으면 결국은 이런 억지논리에 合理的인 사람들이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와 合理가 대결할 때 合理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合理와 科學이 항상 이겼다고 하면 우리는 벌써 地上에서 天國을 建設했을 것입니다. 억지를 부리지만 勇氣가 있고 억지를 부리지만 行動力이 있는 사람한테 행동하지 않는 合理가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韓國의 現實에서 많은 例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1945年 生입니다. 漢字와 처음 만난 기억을 더듬어 보면 初等學校 4학년 때 新聞을 보면서 입니다. 그때가 1950年代인 데 저는 한 번도 書堂에 가지도, 漢字敎育을 부모님에게서 받지도, 千字文을 공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初等學校 4學年 때 漢字混用으로 된 新聞을 읽으면서 저절로 漢字를 깨치게 되었습니다. 新聞을 읽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저절로 깨치게 되었는지, 그것은 漢字가 가진 신비한 自己增殖力 또는 자기 스스로를 敎育하는 그런 힘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漢字를 정확히 쓰는 것은 어렵지만 읽는 것은 漢字가 많이 쓰여진 책이나 신문, TV에 노출되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힘 들이지않고 가능해진다는 것을 저의 경우가 증명을 하고 있습니다.
중·고교시절에도 저는 漢字敎育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漢字를 쓸 때 상당히 隘路事項이 있습니다. 획을 正確하게 順序대로 쓰지 못하고 가끔 까먹기도 합니다.
저는 高等學校 시절에 讀書를 좀 많이 하는 편이었는 데 日本 冊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日本語 공부를 혼자서(그 당시에는 日本語 學院이없었습니다) 문법책을 갖다 놓고 했는데 한 6개월 하니까 「文藝春秋」정도는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漢字의 도움이 없이는 不可能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野球狂인 저는 그 뒤에 日本의 野球 中繼放送을 들으면서 듣기 공부를 하였고, 空軍에 근무할 때 日本 自衛隊하고 연락하는 그런 부대에 있었기 때문에 日本語를 말하는 것도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日本語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漢字의 도움을 받아서 깨우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記者生活을 시작한 1971年부터 저의 나이로 20대후반 30대 사이 저는 한글專用으로 돌았습니다. 그래서 70년대 초에두 딸을 얻었을 때 객기를 부려서 한글 이름을 지어가지고 戶籍登錄을 했습니다. 이 때 왜 제가 한글專用으로 기울어졌느냐하면 한글專用에 대한 社會 雰圍氣가 한글 專用을 하는 것은 民族的이고, 獨立運動이고, 勇氣 있는 일이라는 방향으로 澎湃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論理的으로 비판하는 글을 제가 보지 못해서 그런지 하여튼 저는 한글專用은 뭔가 좋은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것을 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한 10여 년이상 저는 한글專用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한글專用을 하는 잡지에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큰 문제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로 넘어오면서 비로소 제가 이제는 제글만 쓰는 것이아니라 남의 글을 보고 후배기자의 글을 고쳐주고 하는 이런 입장에 서니까 아하 한글專用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구나하고 실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컨대 美國에 계신 분이 저한테 물었습니다.
"요새 주상복합건물이라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래서 무슨 말인 것같으냐고 물었더니
"기둥 柱자, 모양 狀자, 즉 기둥 같이 생긴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주택과 상가가 합쳐져 있는 그런 건물을 住商複合建物이라 한다고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漢字로 표기되었더라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 2년전쯤 '원조교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원조교제가 무엇이냐 해운대갈비 元祖할 때의 元祖이냐,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援助냐? 그때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때 그런 교제하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강남에 가면 음식점 이름에 '우미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측하기에는 '넉넉할 優' 字와 '맛 味'자에 '집 家' 字, 그래서 '맛이 참 좋은 집'이라는 뜻을 한글로 쓴 것같다 라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등등을 보면서 한글專用은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月刊朝鮮의 編輯長이 된 것이 1991년부터인데 이 때부터 論理를 준비를 하여 1993년에, 앞으로 月刊朝鮮은 漢字를 露出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記者들이 반발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反撥을 설득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저는 일종의 對應論理를 갖추 게 되었습니다.
"한글專用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獨立運動하는 것과 같이 民族的이다." 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民族이라는 말의 힘이 세니까 民族이라는 말을 先占한 사람은 말싸움에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한글專用은 民族的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한글專用은 民族的이 아니라 反民族的이다. 한글專用을 하게 되면 우리의 傳統文化를 잃고 파괴하고 단절시킨다. 말하자면 文化·傳統·歷史破壞의 論理가 한글專用이다” 라고 저는 대답을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모르면 인간은 항상 어린아이가 된다." 歷史를 모른다는 것은 나라의 歷史를 모른다는 뜻도 되고, 族譜를 모른다는 뜻도 되고, 父母도 모르고 先輩도 모르고 앞서 걸어간 開拓者들이 여러번 겪었던 試行錯誤의 敎訓도 얻지 못하는 말하자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처럼 뿌리가 없는 人間이다 라는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歷史를 알려면 歷史의 창고를 여는 키가 있어야 하는데 韓國에서는 95%의 기간 동안, 文字歷史 2000년 동안 공용으로 쓰여졌던 것이 漢字인데, 漢字가 남긴 굉장한 文化的인 寶庫를 열 수 있는 열쇠, 즉 漢字를 抛棄한다는 것은 결국은 우리는 뿌리 없는 인간이 되고, 맨날 억지만 부리는 철 없는 어린아이 같은, 마마보이같이 무책임한 이런 인간이 될 것이다 라고 저는 반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글專用을 주장하는 사람 중에 배우고 멀쩡한 사람도 漢字는 外國語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漢字가 外國語이면 族譜는 漢字로 쓰여져 있으니까 당신 祖上은 다 외국사람이냐? 朝鮮王朝實錄이, 高麗史가, 三國史記가 한글로 쓰여져 있느냐? 그러면 이것들은 한국이 아닌 외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가. 한자는 外國語가 아니고 國語이다. 漢字는 國語의 일부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漢字가 外國語'라는 한글專用의 論理를 파괴하지 않으면 우리는 한글專用의 論理에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漢字는 외국어가아니라 國語의 일부라는 주장을 科學的으로 입증하면서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만으로 글을 써도 理解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라고주장을 합니다. 습관적인 사람은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援助交際를 많이 해 본 사람은 援助交際를 한글로 알 수가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항상 잘 아는 사람에게만 언어가 통하면 안됩니다. (이하 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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