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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과태료까지 떠안은 이유
2003년 여름, 대한민국 도시락 업계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정부가 환경 보호를 이유로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전면 금지한 것이다. 실태를 조사해본 창업주 이영덕은 “이건 비상식적인 규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체 플라스틱 용기류 사용량 중 도시락 업체가 쓰는 양은 0.05%정도였습니다. 과자·화장품·생활용품·장난감은 그대로 두고 왜 도시락 업체만 플라스틱을 못쓰게 한다는 말입니까? 세계 어느 나라도 도시락 용기가 플라스틱이란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는 없더군요.”
친환경 대안으로 당시 정부가 제시한 건 펄프 용기였다. 그러나 테스트를 해보니 현실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이었다. 밥알은 들러붙고 국물은 새어 나왔다.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직접 시연을 해보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쓰라는 말입니까? 라고 물으니, 그 분도 말을 잃더군요.”
도시락 업체의 줄도산
단속의 칼날은 매서웠다. 규제 시행 후 전국의 도시락 납품 공장 수백 곳이 줄도산했다. 경쟁 도시락 체인들도 하나둘 간판을 내렸다. 예비군 훈련장, 청소년 수련장까지 도시락 공급이 끊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 | 《한솥》은 한국을 찾은 재일동포 어린이잼버리 참가자들에게 도시락을 지원했다. (2016년 8월) |
당시 《한솥》의 가맹점 300여 곳 중 157개 점포가 과태료, 경고장을 받았다. 이때 이영덕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모든 건 본사가 책임집니다.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영업정지를 당하면, 손실은 본사가 부담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걱정 말고 장사에만 집중해주십시오.”
《한솥》은 정부 상대로 영업 정지 가처분 취소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만약에 패소하면 폐업까지 내몰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싸움이었다. 그 싸움은 장장 5년 동안 계속됐다.
전화위복(轉禍爲福)
그 사이에 편의점에서도 도시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벌금을 내느니 판매를 접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경쟁 체인들이 무너지는 사이 《한솥》만은 살아남았다. 고객이 몰려들면서 매출은 껑충 뛰었다. 점주들은 본사의 헌신에 감동했고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2008년 6월, 손톱 밑 가시가 빠졌다. 정부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도시락 플라스틱 용기 사용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한솥》은 소송에서도 승리했다.
불합리한 규제에 맞선 창업주의 결단이 《한솥》을 더욱 단단한 1등 기업으로 우뚝 세웠던 셈이다.
씻지 않는 쌀, ‘무세미(無洗米)’ 혁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은 철저한 준비에서 나온다. ‘ESG(환경·사회·윤리) 경영’도 마찬가지다. 이영덕은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무세미(無洗米)’ 도입이다. 쌀은 씻는 과정에서 쌀알이 깨지고 영양분이 손실된다. 음식점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낭비되고 쌀뜨물은 오염의 원인도 된다. 그는 일본 잡지에서 물 없이 쌀겨를 벗겨내는 기술을 발견하고, 국내 정미소에 직접 자금을 투자해 생산 라인을 깔아주었다.
“당장 돈이 안 돼도 고객에게 좋은 걸 제공해야 합니다. 국민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히 가야할 길이었습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유니폼, 100% 국산 배추김치와 국산 쌀 사용 원칙도 같은 맥락이다. 이영덕의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착한 마음’이 결국 최고의 경쟁력이 된다.
분쟁 ‘제로’ 프랜차이즈의 비밀
8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거느린 프랜차이즈에서 본사와 가맹점 간 분쟁이 단 한 건도 없다? 《한솥》은 이 기록을 33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본사와 가맹점이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분쟁은 생각이 달라서 생긴다. 그래서 창업 이래 1호점부터 지금까지 모든 신규 점주 교육에 이영덕이 직접 나선다. 첫 이틀 동안 무려 6시간에 걸쳐 자신의 철학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제 생각에 동의하시면 함께 하시고, 아니면 지금 그만두셔도 괜찮습니다. 그만 두시면 가맹비는 전액 돌려드립니다.”
둘째, 《한솥》 정신인 ‘양심, 배려, 정직’의 타협 없는 적용이다. 그는 업주들에게 공개 선언한다. 본사가 납품하는 식자재가 시중보다 비싸면 언제든지 신고하라고, 더 싼 곳이 있다면 즉시 납품업체를 바꾸겠다고 말한다.
이익 배분에서도 원칙은 동일하다. 가령 총 마진이 60일 때 본사는 4.5만 가져가고, 나머지 55.5는 가맹점 몫이다. 협력업체 결제 역시 ‘월말 마감, 익월 결제(현금)’ 원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명절이 낀 달에는 오히려 앞당겨 지불한다. 업체의 자금사정을 배려한 것이다.
2003~2008년의 플라스틱 용기 사태는 기업이라면 피하고 싶은 악몽이었다. 하지만 이영덕은 그 위기를 통해 ‘본사는 점주와 고객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점주들은 본사를 더 신뢰하게 됐고, 고객은 더 많이 점포를 찾았다. 위기 속에서 빛난 건 착한 기업 《한솥》의 진짜 얼굴이었다.
‘돈 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경영’
‘따끈한 도시락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기업’
그 철학은 IMF 때도, 도시락 용기 규제 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솥》을 움직이는 힘이다. (제13화에서 계속)
[서울=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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