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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때도 가격 동결… 고객 최우선 정책
“창업 후 6~7년간 적자(赤字) 행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바닥나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적자경영 6년
그랬다. 90년대 《한솥》 본사는 철저히 적자였다. 이영덕은 가진 것을 전부 쏟아 부었다. 여수 관광호텔을 비롯한 각종 부동산들을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서울 아파트마저 담보로 잡혔다.
“그마저도 국내 은행에서는 대출을 거절당했어요. 외국계 은행에서 간신히 대출 받는 데 성공했었습니다.”
자산이 줄고 빚을 지면 스트레스에 시달릴 법도 했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1호점 오픈 날 이미 성공을 확신했어요. 그날 현장을 본 지인들의 성화에 못이긴 나머지 두 달 뒤 2~4호점을 냈죠. 원래라면 사계절은 겪어보고 2호점을 열려고 했었거든요.”
가맹점 수는 나날이 늘어났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됐던 지, 2~3년 일하면 주택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장사가 잘됐다. 어떤 점주는 몇 채를 갖기도 했다. 그는 확신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본사도 언젠가 흑자로 돌아설 것이다’
이영덕은 《한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가맹점, 협력업체, 본사, 그리고 고객이 함께 살아야 한다.”
그 믿음 하나로 버텼다. 돈이 아닌 꿈을 좇으라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가르침, ‘모두가 함께 성장한다’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길었던 적자의 터널을 버텼다.
일부 점주들의 반기
성장의 이면에는 갈등도 있었다. 가맹점이 70~80개로 늘어났을 무렵,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일부 점주들이 모임을 만들어 "월 10만 원의 로열티를 낼 수 없다"면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로열티는 본사의 유일한 수입원이자 시스템 유지의 근간이었다.
“그건 명백하게 조직 파괴 행위였습니다.”
이영덕은 당황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고 주모자를 찾아냈다. 동시에 변호사와 정부기관 공무원을 만나 법률 자문을 구했다. 프랜차이즈 관련 법규에는 '조직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사전 통보 없이 즉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었다. 다음 날, 그는 해당 점주의 가게를 찾아갔다.
“오늘부로 계약을 해지합니다.”
문제의 점주는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간판은 내려졌고, 그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날 이후 불만은 잠잠해졌고 집단행동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속앓이만 하고 있으면 조직이 무너집니다. 원칙 있는 단호함이 신뢰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통해 신뢰와 권위가 조직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사의 확고한 원칙과 대응이 시스템을 지키고 브랜드의 권위도 세운 것이다.
IMF때 가격 동결한 유일한 회사
《한솥》의 최대 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였다. 원·달러 환율이 800원에서 2400원까지 폭등, 식자재와 도시락 용기 가격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협력업체 대표들이 이영덕을 찾아와 가격 인상을 요구했다. 2배까지는 아니라도 최소 70%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는 업체 대표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상담했다.
“지금은 국가적 대재난입니다. 우리 《한솥》은 서민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 아닙니까. 이렇게 모두가 어려울 때 가격을 올릴 수는 없습니다.”
IMF로 실직한 서민들에게 《한솥》마저 가격을 올릴 수는 없었다. 이영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를 몸으로 실천했다.
첫째, 합리성(로고스).
“가격을 동결하면 당장은 손해겠지만, 모든 외식 업체가 가격을 올릴 때 우리만 버티면 고객들이 《한솥》으로 몰릴 겁니다. 딱 1년만 함께 버텨봅시다. 그땐 매출이 두 배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때 손실을 만회합시다.”
둘째, 감정(파토스).
그는 절박한 협력업체 대표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진심으로 호소했다.
셋째, 신뢰(에토스).
평소 약속을 지키고 정직하게 거래하며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에 업체 대표들은 그의 말을 믿었다. 놀랍게도 그의 제안을 거부한 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다른 외식 프랜차이즈가 가격을 20~50% 인상할 때 《한솥》만이 가격을 지켰다. 실직자들은 《한솥》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창업 아이템을 찾는 이들은 《한솥》 가맹점으로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식자재 거래량과 매출은 무려 2.5배로 폭증했다.
IMF외환위기, 반발, 적자!
위기 때마다 이영덕이 택한 무기는 ‘돈’이 아니라 ‘신뢰와 정직’이었다. IMF를 거치며 《한솥》은 국민 브랜드로 도약했다. 점주들은 매출 급증에 환호하며 본사에 고마움을 전했고, 협력업체들은 약속을 지킨 이영덕에게 무한 신뢰를 보냈다. 무엇보다 고객들은 어려운 시절 곁을 지켜준 《한솥》을 ‘착한 기업’으로 각인했다. (제11화에서 계속)
[서울=이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