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 인기메뉴 탄생기
“1993년 7월 7일 오픈 첫날의 순간이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그날 도시락 1천 개를 팔았고 매출 157만원을 기록했죠.”
8평 남짓한 1호점은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인산인해였다. 매장 앞에는 기나긴 줄이 늘어섰고, 주문표는 밥 짓는 속도를 앞질렀다. 이강영 점장의 SOS를 받은 이영덕은 급히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뛰어들었다.
《한솥》은 밥집, 밥이 기본이다
“가게가 좁으니 동선(動線)이 엉키면 큰일이었죠.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밥을 푸는 일이었습니다.”
1인분 280g.
그는 커다란 밥솥 앞에서 쉴 새 없이 밥만 펐다. 저울에 일일이 무게를 재가며 그릇에 담았다. 피크타임이 지나면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손이 저울이 되었다.
“어느새 제 손이 저울이 되어 있더군요.”
밥알 하나까지 맞추던 그 감각은 훗날 《한솥》의 맛을 정의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되었다.
《한솥》은 도시락집이지만, 본질은 ‘밥집’이었다. 밥이 기본이라는 철학은 모든 메뉴를 관통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일본에서 들여온 도시락 용기가 며칠 만에 동이 난 것이다. 다음 선적을 기다릴 여유조차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매일 인편으로 오사카를 왕복하면서 용기를 공수해왔다.
“모든 게 처음이던 그 시절엔 문제가 생기면 하나하나 바로바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970원의 비밀, 콩나물 비빔밥
1호점의 폭발적인 인기를 견인한 건 13가지 파격 메뉴였다. 모든 메뉴는 이영덕이 직접 개발했다. 맥도널드 같은 외국 프랜차이즈보다 가성비 좋게, 한 끼 기분 좋게 식사할 수 있는 메뉴를 지향했다.
그가 노린 건 단순히 저가가 아니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직한 가격이었다. 고객을 단번에 끌어당길 미끼 상품이 필요했다. 아이디어를 찾던 어느 날, 명동 뒷골목에서 허름한 콩나물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먹어보니 맛이 괜찮았어요. 이걸로 메뉴를 만들면 되겠다 싶더군요.”
그는 바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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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솥》의 970원 콩나물밥 |
‘콩나물로 비빔밥을 만들면 1천 원 아래로도 가능하겠다!’
고춧가루와 파채를 곁들인 간장 베이스 양념장에 고기 고명, 콩나물과 밥을 얹었다. 비벼먹어야 하니까 깊이가 필요했다. 라면회사에 전화를 걸어 컵라면 용기를 들여왔다.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메뉴가 바로 ‘970원 콩나물밥’. 천 원을 내면 거스름돈 30원으로 공중전화를 걸 수 있는 가격이었다. 주머니 가벼운 직장인들과 학생, 어르신들이 열광했다. 누군가는 싼 밥이라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손님들은 말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이 참 맛있어요.”
그 한마디가 모든 평가를 대신했다.
《한솥》 그 이름에 담긴 뜻
브랜드명 《한솥》도 그 무렵 완성됐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처럼, 고객에게 어머니의 부엌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여러 후보를 올려놓고 고심하던 그는 ‘한 솥 밥’에서 ‘밥’ 한 글자를 뺐다. 신의 한수였다. 발음은 간결해졌고 의미는 더 깊어졌다.
솥은 온기의 상징이었다. 로고는 거꾸로 엎은 솥뚜껑을 형상화했다. 간판에는 ‘따끈한 도시락’ 문구를 새겨 넣었다. 당시 도시락이라 하면 식은 밥이었다. 차갑게 식은 김밥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 《한솥》은 선언했다.
“누구나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권리가 있다”
시간이 흘러 콩나물밥은 단종됐다. 그러나 그 한 그릇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콩나물밥’, ‘새댁’, ‘장모님’에서 시작한 메뉴들은 이제 ‘도련님’, ‘고기고기 도시락’으로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새댁 도시락'은 여성 고객을 위해 밥 양을 줄이고 생선가스, 김치 등 간단한 반찬으로 구성했다. ‘장모님 도시락’은 신선한 나물과 계란말이 등을 곁들인 한식 스타일, ‘굴비 도시락’은 맛좋은 영광굴비와 깔끔한 밑반찬으로 승부했다.
'도련님 도시락'은 젊은 남성을 겨냥해 돈가스(돼지), 햄버그(소), 치킨(닭)으로 채웠다. 육류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춘 메뉴였다. 훗날 육류 3종을 모두 담은 ‘고기고기 시리즈’로 이어진 히트의 DNA가 바로 이 도련님에서 태어났다.
메뉴는 바뀌었지만, 밥의 온도는 변하지 않았다.
따끈한 밥 한 그릇의 힘이,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대한민국 도시락 문화를 바꿔놓았다. (제10화에서 계속)
[서울=이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