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語版】反米로 옮겨 붙은 제주4.3사건

끝나지 않은 70년 역사논쟁 밤에는 左翼, 낮에는 西靑에 시달린 제주도민들
日付: 2018年04月11日 01時10分

   4월 첫 주말인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 미국대사관 정면에서는 집회가 열렸다. 현장은 제주 4.3사건에 대한 미국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같은 시각 바로 옆 도로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면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태극기 집회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광화문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두 가지 상반된 집회장면은 올해로 70년을 맞이한 4.3의 진실을 둘러싼 역사논쟁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서울=이민호]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 관련단체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집회 및 기자회견 장소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성조기가 휘날리는 미국대사관 정문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20~30m가 현장이었다.

 시위자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역사에 정의를, 4.3正名이란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正名이란 미국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집권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4.3의 추가진상조사 목적 역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역사적 정명에 방점이 찍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梁閏京 4.3희생자유족회장은 올해 상반기 중 4.3특별법을 제정하고 미국사과를 촉구하려 한다“4.3누구 때문인가? 바로 미국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용현 4.3 범국민위원회 상임대표는 참가자들에게 “4.3과 한국전쟁의 공통점은 무엇이냐물으며 미국개입설을 암시하면서 나의 아버지는 19507월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했다며 책임의 화살을 李承晩 당시정부에 던졌다.

이들 단체들의 연합체격인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4.3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 인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4.3의 발발과 진압과정에 미군정의 대령이 제주도 사령관으로 파견되고, 미국산 칼빈소총이 반입된 것 등을 근거로 미국 책임이 무겁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4.3사건의 도화선은 194843일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5.10남한 단독선거 반대를 명분으로 경찰서와 서북청년회 숙소 등 우익단체를 습격하면서 빚어졌다. 200310월 정부가 채택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도, 4.3사건은 350여명으로 추정되는 무장대가 제주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공격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남로당은 조선공산당의 후계조직이다. 남로당 강령은 마르크스 레닌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체제 국가건설을 목표로 했다. 무장대 총책 金達三은 제주도를 탈출하여 19488월 월북할 당시 지하선거 투표지 52,350명 분량을 갖고 올라갔다. 김달삼을 비롯해 安世勳, 姜圭贊, 高眞姬, 李貞淑 4.3봉기 주동자들은 북한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북한 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김달삼은 김일성으로부터 국기훈장 2급을 받고, 현재는 한국으로 치면 국립묘지격인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있다. 이처럼 4.3사건의 발단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이었고, 그 주체가 남로당원들이었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월북한 김달삼은 1948825,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 석상 연설에서 “30만 제주도 인민들이 불타는 조국애로써 강철같이 단결하여 미 제국주의와 그 주구 매국노 李承晩 徒輩들의 남조선 분할식민지 침략정책을 단호히 반대하고 조국통일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 않고 싸웠다고 보고했다.

 이런 史實에 비춰볼 때 현재 4.3범국민위원회가 강조하고 있는 미군정과 경찰, 서북청년회(북한출신 반공단체)의 탄압에 맞선 항쟁이란 주장은 원점을 흐리는 관점이다. 4.3을 군인과 경찰을 무자비한 학살자로 묘사하고, 공산폭도들을 불의에 맞선 사도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도 역사의 왜곡이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당시 제주도민들의 삶은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었다. 낮에는 군경과 西靑(서북청년회)에 당하고, 밤에는 좌익무장대에 당하는 형국이었다. 밤마다 집을 비우고 토굴로 숨어들어가거나 해안가 바위틈에 기거해야 했다. 한마디로 낮에는 西靑, 밤에는 좌익에 시달렸다. 밤새고 집에 돌아가면 기르던 소와 말, 곡식을 도둑맞기 일쑤였다.

 4.320세기에 일어난 엄청난 비극의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인명피해는 막심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가 4.3희생자로 결정한 인원을 살펴보면, 작년 7월말 현재 희생자는 14,232명에 달한다. 사망 1245, 행방불명 3,575명과 기타 후유장애인, 수형인 등이다. 유족회나 범국민위는 이보다 많은 25천명~3만 명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4.3사건 70, 아직도 역사논쟁의 공방은 격화일로를 걷고 있고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현재 분단체제 속에서 전도가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있다. 여전히 남북 간의 체제와 이념대결은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내부에서 미국에 대한 책임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어찌될 것인가.


閉じる